2017년 06월 25일 교회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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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7-06-25 08:22 조회2,5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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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5일, 성령강림절 후 세번째 주일

 

예배순서

여는 찬양 | 다같이_예수 피를 힘입어

신앙고백 | 사도신경

경배와찬양 | 다같이

기도 | 신정일 목사

봉헌 | 홍은영 권사_내게 있는 모든 것을

광고 | 신정일 목사

성경봉독 | 양순금 집사_창세기 21:14-21

설교 | 신정일 목사_샘은 가까이 있다

축도 | 신정일 목사

 

알립니다.

1.예배 후, “믿음세우기”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2.7월 1일(토)까지 르바란 휴일 관계로 주일 예배를 제외한 모든 교회 모임이 없습니다.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은 일정을 게시판에 기록해 주시고, 안전한 여정을 위해 서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중직자 모임이 7월 9일(주일) 오후 1시에 있습니다.

4.하반기 제직회가 7월 16일(주일) 예배 후에 있습니다.

5.교회 요람이 교회 홈페이지(http://greatvision.kr)에 제작되어 있습니다. 개인 연락처와 사진을 바꾸고 싶으신 분은 셀 리더나 사무실로 알려주세요.

 

기도제목

1.몸이 아픈 성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2.성도들의 사업과 직장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풍성하기를

3.12학년 수험생을 위해_김민주, 성건우, 조수빈, 최민준, 최승우

 

다음주 예배 안내 

 

날짜

여는찬양

기도

성경

봉독

봉헌위원

행사

07/02

다같이

송민아

10:40-42

양은희

강미주

 

07/09

다같이

신의교

24:34-39

오경남

김혜진

중직자모임

07/16

다같이

김재윤

8:1-11

오현주

박미경

제직회

07/23

다같이

신혜영

28:10-22

유지수

박옥란

 

 

 

이번 주중 말씀

수요예배 : 르바란 연휴관계로 모이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 르바란 연휴관계로 모이지 않습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그 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찬수, “보호하심” 중에서

 

나의 아버지는 고신 교단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으로 정말 경건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교회를 전심으로 사랑하셨다. 조그만 개척교회의 담임목사였는데, 교회를 위해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시다가 그만 17일째 되던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교회를 불같이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으시고 그 담임목사를 데려가시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당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분은 하나님도, 아버지도 아닌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 목사인 남편이 그토록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목사’라는 직분에 대해 회의감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자꾸 나에게 “네가 커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너희 아버지는 교회를 정말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금식기도 하시는 중에 돌아가셨단다. 하나님께서 너무 빨리 부르셔서 미처 열매를 거두지 못하셨지. 그러니 자식인 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막내인 나에게 아버지 뒤를 이어 목사가 되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어머니는 겉으로 온순하고 착한 내가 목사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속은 바리새인과 같았는데 말이다.

 

몇 년 전, 미국집회를 마치고 어머니가 계시는 시카고에 들렀다가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처녀 시절 예수님을 영접한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 머릿속으로 지난날에 대한 필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40일 금식기도를 하러 가셨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셨던 그 밤이 생각났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에도 어머니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가? 우리 어머니가 이상한 분일까?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고, 남편이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분일까?

 

어머니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충돌하는 그날 밤을 상상해보자. 남편의 금식기도를 통해 교회가 불같이 일어날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의 관점과 그런 남편을 데려가신 하나님의 관점이 충돌했을 때, 얼마나 큰 투쟁이 있었겠는가? 얼마나 싸웠겠는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본능처럼 일어나는 그날 밤,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본능과 얼마나 집요하게 싸웠겠는가?

 

끈질긴 어머니의 기도로 서른 살 때 내가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기도만 하고 미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도의 열매를, 교회를 향한 그 기도의 열매를 자식인 내가 지금 말도 안 되는 놀라운 방법으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거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눈물로 부르던 찬양이 하나 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 늘 보호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찬송가 310장)

 

풍랑은 잠잠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택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가정은 길거리로 나앉았다. 죽을 고생을 해야 할 만큼 풍랑은 여전히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주님이 늘 돌보실 것을 확실히 아는 그 어머니의 믿음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 앞에 굴복시켜야 한다. 나의 관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모두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