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8월 06일 교회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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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7-08-05 11:33 조회2,6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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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성령강림절 후 아홉번째 주일

 

예배순서

여는 찬양 | 다같이_부르신 곳에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경배와찬양 | 다같이

기도 | 유화영 집사

찬양 | 성가대_주 예수여 은혜를

봉헌 | 신혜영 권사_내게 있는 모든 것을

광고 | 윤창식 장로

성경봉독 | 윤석환 장로_창세기 29:1-3

설교 | 신정일 목사_아멘, 그 이후

애찬식 | 다같이

축도 | 신정일 목사

 

알립니다.

1.오늘 예배에 하반기 애찬식이 있습니다. 모든 교우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2.예배 후 셀 리더 모임이 있습니다.

3.인니어, 영어반 2017년 2학기 개강이 8월 10일(목)에 있습니다.

_화요인니어반(오전 10:30, 초급 + 중급)

_목요인니어 영어반(오전 9:30, 영어초급 / 10:30, 인니어 초급 + 중급

4.100일 성경통독을 위한 강의가 8월 20일 주일예배 후에 있습니다. 

5.교회 설립 14주년 감사예배가 8월 27일 주일에 있습니다.

6.CGN TV와 자유교회가 공동주최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WORSHIP CONCERT”가 8월 19일(토) 오후 2시, 참빛문화원에서 있습니다(인도 : 온누리교회 워십하우스 예배팀)

7.7.24-8.4 / 조혜경 전도사, 7.31-8.25

 

기도제목

1.몸이 아픈 성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2.성도들의 사업과 직장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풍성하기를

3.12학년 수험생을 위해_김민주, 성건우, 조수빈, 최민준, 최승우, 김민우, 조성빈, 차영민

 

다음주 예배 안내 

 

날짜

여는찬양

기도

성경

봉독

봉헌위원

행사

08/13

여는 영상

윤석환

37:25-28

윤창식

양순금

정기당회

08/20

다같이

오현주

15:21-28

이상열

양은희

 

08/27

다같이

윤창식

2:1-10

이연희

오현주

중직자모임

09/03

다같이

이상열

16:21-28

이예숙

유화영

 

 

이번 주중 말씀

수요예배 : 에스겔 2:1-10

새벽기도 : 화_겔 3:1-15, 수_겔 3:16-27, 목_겔 4:1-17, 금_겔 5:1-17

 

오늘의 묵상

정말 간절한가?

윤성철, “올인” 중에서

 

나는 흙수저 출신이다. 세상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 어느 쪽으로도 그리스도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 황량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머니는 예수님을 제외하고 모든 용하다는 분들을 두루 섭렵하실 정도로 정성과 열심이 특별했던 분이었다. 지금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절로, 점집으로, 무당집까지 다닌 기억이 있고 부적을 옷에 넣고 다닌 적도 있었다. 급기야 무당을 집으로 불러 당시 아버지의 병환으로 굿판까지 벌인 기억이 난다.

 

무당이 돼지머리에 절을 올리고 그 무거운 돼지머리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당시 3층이던 우리 집을 오르내리던 모습이 지금도 아주 생생하다. 그때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저 돼지는 자기 하나 간수 못해 저렇게 비참하게 머리가 잘리고 푹 삶아져서 상 위에 놓여 있는데 왜 쟤한테 빌어야 하지?’ 다른 한편으로 무당의 열심에 꽤 놀랐다. 사실 굿을 해주고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 액수가 이미 정해져 있을 테니 열심히 하든 대충하든 별 상관이 없을 텐데, 그 무당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굿을 했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도 그 무당의 눈치를 봐가며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무당굿보다도 못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 진리와 생명을 얻었는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얼마나 냉정하고 차분하고 교양 있는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종종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2천 년 전에도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했는지 예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태복음 11:16,17)

 

쉽게 말해서 기쁜 소식을 전해도 반응하지 않고 슬픈 회개의 말씀 앞에서도 반응하지 않는, 도무지 반응이 없는 무덤덤한 세대를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무조건 소리를 높이고 몸부림쳐야 바른 예배라거나 올바른 신앙의 태도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항상 핵심을 비껴가 반문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태도’다. 진리와 생명을 가진 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드리는 예배의 태도, 진리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성경은 이 태도를 가리켜 ‘간절함’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다 알아서인지, 이미 배불러서인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간절함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핵심인 팔복八福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간절한 이들에게는 복을, 이미 배부르고 만족한 이들에게는 화를 선포하신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누가복음 6:20,21)

 

본문에서 언급한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들의 영적 수준이 어떻든 실제적인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지금 이들이 아직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 갈급하고 목마르고 배고프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런가? 간단하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만족함을 찾지 못해 결국 주님의 복음 앞에 나와 주님만이 공급해주시는 하늘의 것으로 충만함을 얻기 때문에 복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목마름과 배고픔을 가지고 끊임없이 주님께 매달리기 때문에 주님의 복을 누린다. 영적으로 성숙해도 여전히 갈급하고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 갈급함으로 매달릴 때 결국은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게 되고 주님의 풍성함으로 채워져 배부르고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