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 07일 교회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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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7-05-07 08:42 조회2,907회본문
2017년 5월 7일, 어린이주일
예배순서
여는 찬양 | 다같이_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신앙고백 | 사도신경
경배와찬양 | 다같이
기도 | 이연희 집사
찬양 | 성가대_나의 사랑하는 책
봉헌 | 오현주 집사_내게 있는 모든 것을
교회소식 | 윤창식 장로
성경봉독 | 박옥란 집사_예레미야 35:18-19
설교 | 신정일 목사_영적 목표를 높이라
축도 | 신정일 목사
알립니다.
1.예배 후 임직자 교육이 있으며, 임직식은 6월 4일 주일에 있습니다.
2.믿음세우기 성경공부가 5월 21일(주일, 오후 12시부터)부터 진행됩니다. 신청은 셀 리더 혹은 사무실로 해 주세요.
3.자카르타 극동방송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5월 14일(주일) 오후 6시에 Usmar Ismail Hall에서 있습니다. 이번 연주는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의 교육 사업을 후원하는 자선 음악회입니다. 티켓 문의 : 조혜경 전도사
4.자카르타 극동방송의 10주년 감사 음악회가 5월 28일(주일) 오후 4시, 참빛문화원에서 있습니다.
5.이번 주 수요예배 설교는 한마음교회 고형돈 목사님께서 전해주십니다.
기도제목
1.몸이 아픈 성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2.성도들의 사업과 직장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풍성하기를
3.12학년 수험생을 위해_김민주, 남경지, 성건우, 조수빈, 최민준, 최승우
다음주 예배 안내
날짜 |
여는찬양 |
기도 |
성경 |
봉독 |
봉헌위원 |
행사 |
05/14 |
남성중창 |
차경일 |
행 7:55-60 |
성진일 |
유화영 |
어버이주일 |
05/21 |
다같이 |
최주혁 |
벧전 3:13-22 |
송민아 |
이밀례 |
고3파송예배 |
05/28 |
황현주 |
한상혜 |
행 1:6-14 |
신유리 |
이연희 |
|
06/04 |
다같이 |
신정일 |
강갑중 |
윤창식 |
이명순 |
임직식 |
이번 주중 말씀
수요예배 : 고형돈 목사
새벽기도 : 화_왕상 2:1-25, 수_왕상 2:26-46, 목_왕상 3:1-15, 금_왕상 3:16-28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찬수, “에클레시아” 중에서
교회가 하나님을 아버지의 자리로 복귀시켜드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의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몇 년 전에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쓴 <아빠는 왜?>란 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시의 내용이 이렇다.
엄마가 있어 좋다 / 나를 예뻐해주셔서 // 냉장고가 있어 좋다 /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 강아지가 있어 좋다 / 나랑 놀아주어서 //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쓴 이 시가 오늘날 아버지 부재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경우는 다르지만 ‘아버지 부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 당시의 영적인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면,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대단했고 율법은 난무했는지 모르나 그 종교적인 열심 속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을 친근한 아버지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사 63:16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8
이게 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묘사한 것 아닌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아버지 삼아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생활은 열심이었지만 이 포인트를 다 잃어버렸다. 그런 시대 상황을 아파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나아와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라며 구하는 기도도 필요하지만, 이런 것들을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에 대한 선언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중요한 핵심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놓친 것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로 이 정신 아닌가? 우리가 이걸 알아야 한다. 오늘도 교회 중직자들이 놓치기 쉬운 정신이 바로 이것임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뒤로 하고, 그저 종교적으로 열심히만 하면 딱 이런 영혼 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가슴 아픈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열심을 내는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는 그 열심 이전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삼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고.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자니, 앞에서 소개한 초등학생의 시가 내게는 자꾸 이렇게 읽혀졌다.
담임목사가 있어 좋다 / 나를 예뻐해주셔서 // 장로가 있어 좋다 /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 순장이 있어 좋다 / 나랑 놀아주어서 //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목사가 설교하고, 눈에 보이는 장로가 기도하고, 눈에 보이는 성가대원들이 찬양하면서 오늘날 교회가 전부 인간들만의 잔치로 전락해버렸다. 하나님이 왜 계신지 모르겠고, 하나님이 안 보이셔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상태가 바로 교회의 변질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