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2018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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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8-03-25 07:40 조회2,8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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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종려주일

 

예배순서

여는 찬양 | 성가대남성_십자가 그 사랑

신앙고백 | 사도신경

경배와찬양 | 다같이_다 와서, 구주의 십자가, 당신은

기도 | 차경일 집사

찬양 | 성가대_이 세상의 모든 죄를

봉헌 | 박옥란 권사_내게 있는 모든 것을

광고 | 윤창식 장로

입교세례식 | 

성경봉독 | 조섭 집사_요한복음 12:12-19

설교 | 신정일 목사_내 마음 알아다오

성찬식 | 

축도 | 신정일 목사

 

알립니다.

1.오늘은 종려주일이며, 입교세례식(입교:우승아, 세례:유윤 아구스티나), 성찬식이 있고,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2.한목협 주관 부활절한인교회연합예배가 열린교회에서 다음 주일 오후 2시에 있습니다.

3.내일 부터 30일(금)까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오전 4:30분에 있습니다.

4.성금요일 예배가 3월 30일(금) 오후 7:00에 있습니다.

5.교회 보수공사 중입니다. 수고하는 모든 이들을 격려해주시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기도제목

1.몸이 아픈 성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2.성도들의 사업과 직장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풍성하기를

3.12학년 수험생을 위해_성건우, 김민우, 안지원, 조성빈, 차영민

 

다음주 예배 안내 

 

날짜

여는찬양

기도

성경

봉독

봉헌위원

행사

04/01

다같이

윤창식

10:34-43

차경일

선승현

부활주일

04/08

성가대 여성

한상혜

4:32-35

최주혁

신유리

당회

04/15

다같이

홍은영

요일 3:1-7

하동환

신혜영

 

04/22

다같이

김재윤

23:1-6

한상혜

양순금

야외예배

 

이번 주중 말씀

수요예배 : 눅 22:24-46

새벽기도 : 월_눅 22:27-65, 화_눅 22:66-23:12, 수_눅 23:13-38, 목_눅 23:39-56, 금_눅 24:1-27

 

오늘의 묵상

당신은 복음의 감격이 있는가

이찬수, "복음으로 산다" 중에서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 21:5,6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자. 그 당시 인권과 권한 다 빼앗기고 짐승 취급을 당하며 살아가던 노예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노예 상태가 영구히 계속되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출 21:2) 이것이 그 당시 노예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의 메시지였겠는가? ‘비록 내가 노예로 팔려와 당나귀 비슷한 대우를 받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 곧 끝나간다. 이 기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자유를 회복한다!’

 

그들은 이 소망을 가지고 고통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다 지나고 이제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어떤 노예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 다시 자유를 누릴 권한을 받았지만, 그 자유를 주인에게 반납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유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주인의 집에 머물면서 계속 주인의 노예로 살게 해달라는 이상한 청원을 하는 노예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은 그 노예가 어떤 타의나 강압에 의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 의지로 원한다는 것이 입증되면 그 노예의 귀를 뚫어주었다. 귀 뚫린 종은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그 권한을 반납하고 스스로 주인의 노예로서  평생 살기로 결단한 노예임을 나타냈다.

 

상상해보라. 귀를 뚫으려는 주인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는 노예의 표정을 말이다. 분노와 울분과 억압으로 꽉 찬 표정이었겠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주인에 대한 은혜와 사랑의 감격이 얼마나 컸으면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고 평생 주인의 노예로 살겠다는 결단을 했겠는가? 아마도 두 눈에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 고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주인이 얼마나 따뜻하게 잘 대해줬으면, 모두가 자기를 당나귀 취급할 때 따뜻하게 거두어주고 격려해준 주인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얼마나 컸으면 자발적으로 노예 생활을 계속하겠노라고 그렇게 귀 뚫린 종의 자리까지 가겠느냐는 말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구절이 어떻게 읽히는가? 이 말씀을 논리로 읽으면 안 된다. 이것은 바울의 눈물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천인공노의 죄를 저질렀는데…, 용서받지 못할 나 같은 사람을 거두어주신 주님.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살펴주신 주님. 그 주님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감격의 눈물이 배어 있는 것이 바로 로마서 5장 8절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핵심은, 바로 이 감격이 사라져버린 채 명맥만 유지하는 데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토미 테니(Tommy Tenney)가 쓴 《종의 마음》이란 책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섬김의 정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토미 테니의 이 말이 내 마음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이론과 논리로 배워서는 낮아지는 자리로 갈 수 없다. 은혜에 대한 감격,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에 대한 눈물, 이것이 자발적인 종이 되어 낮은 자리로 갈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픈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다 식어빠진 감격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날카로워지고,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메마르고 삭막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게 되었는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