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2018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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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8-07-01 07:19 조회2,702회본문
2018년 7월 1일, 성령강림절 후 여섯 번째 주일
예배순서
여는 찬양 | 다같이_예배합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경배와찬양 | 다같이_예수 열방의, 슬픈 마음, 전능하신
기도 | 차경일 집사
찬양 | 성가대_믿음으로 갑니다
봉헌 | 양순금 집사_내게 있는 모든 것을
광고 | 신정일 목사
성경봉독 | 선승현 집사_사무엘하 1:17-27
설교 | 신정일 목사_다윗이 부른 슬픈 노래
축도 | 신정일 목사
알립니다.
1.7월 새날 기도회가 이번 주 토요일(7.7) 오전 6시에 있습니다.
2.다음 주일 예배 후 중직자 모임이 있습니다.
3.자유교회와 땅그랑 교민교회 주최로 “자카르타 청소년 연합수련회”가 7월 13-15일까지, 교민교회에서 진행됩니다.
4.하반기 교회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_7.6 : 7월 새날 기도회 _8.4 : 8월 새날 기도회 _8.26 : 설립15주년 감사주일, 애찬식
_9.1 : 9월 새날 기도회 _9.9 : 하반기 제직회 _10.6 : 10월 새날 기도회
_10.28 : 종교개혁주일, 성례식 _11.1-21 : 다니엘 기도회 _11.4 : 추수감사주일
_12.1 : 12월 새날 기도회 _12.25 : 성탄절 _12.31 : 송구영신예배
기도제목
1.몸이 아픈 성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2.성도들의 사업과 직장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풍성하기를
3.12학년 수험생을 위해_성건우, 김민우, 안지원, 조성빈, 차영민
다음주 예배 안내
날짜 | 여는찬양 | 기도 | 성경 | 봉독 | 봉헌위원 | 행사 |
07/08 | 다같이 | 최주혁 | 고후12:2-10 | 성진일 | 오현주 | 중직자모임 |
07/15 | 다같이 | 홍은영 | 삼하6:1-5 | 송민아 | 유화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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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2 | 다같이 | 김재윤 | 정한호목사 | 신유리 | 이밀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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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9 | 다같이 | 송민아 | 요6:16-21 | 신의교 | 이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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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중 말씀
수요예배 : 학 1:1-15
새벽기도 : 화_말 1:1-14, 수_말 2:1-9, 목_말 2:10-17, 금_말 3:1-18
오늘의 묵상
하나님은 부재중?
A.W.토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중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는 교리를 아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금 이 시대는 ‘부재자 하나님’의 시대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듯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현재 곁에 있는 분’에 대해 말하듯 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그분께 말씀 드리는 사람, 즉 기도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러나 아기가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만족할 수 없듯이, 태양이 없으면 지구상의 삶이 가능하지 않듯이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만족하거나 건강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분 없이도 잘 살아가는 것이 그분의 본래 뜻이었다면, 그분의 임재를 꼭 필요로 하는 존재로 우리를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다! 성경과 우리의 도덕적 이성은 그분의 임재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피해 나무들 사이에 숨었다. 자신들에게 그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두려움과 당혹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망각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의 마음은 언제나 편하지 않다.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요나는 그분의 임재 앞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갔다. 자신의 개인적 죄를 날카롭게 의식한 베드로는 주님의 면전에서 도망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떠나주시기를 간청했다.
인간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만, 막상 그분 앞에 서면 편하지 않다. 이것은 죄가 우리 안에 만들어놓은 ‘도덕적 자기모순의 심리’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시지만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은 어떤 기독교 교파의 교리 선언에도 나와 있지 않다. 이런 교리를 믿는다고 감히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건한 신앙인들은 그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기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의 믿음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 신조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 특히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다.
이런 우리의 언행에 근거해 판단할 때 나는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쪽을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은 완전히 악한 짓이 아니라면 그분이 눈감아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런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그토록 많은 허튼 짓을 주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독교 사역을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바쁜 사람들은 세상을 복음화하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성경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부재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자기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나 버리셨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찌 그런 생각이 나겠는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심한 경우는 틀에 박힌 것처럼 인습적인 교회들이다. 내가 볼 때, 교회들의 그토록 많은 예배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뿌리 깊은 생각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인다면, 그 집회가 형편없는 모임으로 전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분의 달콤한 향기가 집회 장소를 가득 채운다면 아무리 재미없는 설교라 할지라도 즐겁게 견뎌낼 수 있겠지만, ‘부재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는 그 무엇도 그 모임을 구할 수 없다.